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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유서깊은 천년고도 화룡

시간:2018-12-04 12:43:05 편집:南香伊

      ‘관광흥주’ 계렬보도
  ‘천년고도 백년현’이라고 불리우는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시는 유서깊은 곳입니다. 화룡은 일찍 2만 6000년 전인 구석기시대에 벌써 인류가 생활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조 천보년간에는 발해국에서 화룡에 도읍지를 세웠으며 청조 광서년간에는 청정부의 봉금령이 해제되고 해란강과 두만강류역이 개간됨과 동시에 광산이 개발되고 통상이 가능해짐에 따라 화룡은 중요한 량식생산구와 무역구로 되였습니다.
  1910년 (청조 선통 2년)에 청정부에서 정식으로 화룡현을 설립하였고 1945년에는 화룡현인민정부가 성립되였으며 1993년에는 국무원에서 화룡현을 화룡시로 명명하였습니다.
  1928년 화룡현에는 제일 처음으로 당조직이 세워졌으며 1930년에는 중공연(연길)화(화룡)중심현위가 건립되였으며 같은 해 동북에서 제일 첫 홍색정권인 약수동쏘베트정부가 화룡에서 탄생하였습니다. 1932년에는 화룡현어랑촌항일유격근거지를 세우고 ‘동북의 민족혼’이라고도 불리우는 ‘13용사’ 등 저명한 항일영웅들이 용솟음쳐나왔습니다.
  해방전쟁시기 인구가 13만명도 안되는 화룡에서 6320명이나 참군하였으며 1만 2000여명이나 전선을 지원했고 865명이 전쟁터에서 조국혁명승리를 위해 보귀한 목숨을 바쳤습니다.
  항미원조전쟁기간에도 3197명이 중국인민지원군에 참가하였으며 1500여명이 보귀한 생명을 바쳤습니다.
  화룡의 산과 들에 세워진 혁명렬사기념비에는 선렬들의 공적이 기재되여 오늘날의 평화와 행복이 쉽게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천추만대에 길이 전하고 있습니다.
  당의 11기 3중 전회 이후 개혁개방의 봄바람을 타고 화룡도 생기와 활력을 찾았으며 천지개벽의 력사성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현재 화룡은 ‘두만강지역 변경의 명주도시’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림철, 리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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